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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부탁이 있습니다. 자작님.”
만남을 요청한 것은 그녀 쪽이었다.
“저희도 사냥에 나가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그녀가 말하는 사냥이 몬스터 파워볼사이트 사냥이란 것을 되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헌터가 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저한테 허락을 받으실 필요는 없는데…
그보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신 거죠?”
“형우씨하고 지혜씨가 이번에 아이들을 구하러 갔다고 들었습니다.”
“지구에서 끌려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형우씨도 지혜씨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요.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저희들도 그 두 사람처럼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쪽 세상은 지구와 달라서 힘이 없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 이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계속 ‘저’라고 하지 않고 ‘저희’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 그녀와 함께 다니는 여인들을 일컫는 듯 하다.
“그 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여러분이 해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만이 의미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저희는 좀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더이상 나약하게 살아가는 일은 지쳤어요.”
유미의 대답 중 ‘나약’이라는 단어에서 난 그녀의 절박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다니던 여자들은 모두 남자들에게 심한 짓을 당한 여인들이다.
그일은 그녀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고, 그녀들은 이제 더이상 남자에게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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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루만 있다가 출발하도록 하세요.”
여자들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거 같았다.
난 제럴드를 시켜 그녀들을 파워볼게임 위한 방어구와 무기, 그리고 적절한 아티팩트를 구해주었다.
그리고 몇 명의 베테랑 헌터들을 붙여서 사냥을 떠나도록 배려해주었다.
이틀 뒤 아그니스와 내가 아이들의 숙사에 들렀다가 나오고 있을 때, 우리는 그녀들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하나 같이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들어오는 것이 어쩐지 심상치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숫자를 세어 보았다.
돌아온 여자들은 모두 스물 다섯 명. 한 명도 빠짐없이 돌아왔다.
옷에 피가 묻은 여자도 없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부상을 당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아! 자작님.”
여자들은 건물로 들어서다 날 발견하고 부산스럽게 인사들을 했다.
평소와 다름 없는 태도이지만 여전히 얼굴을 밝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날 발견하고는 더 어두워진 느낌이 들었다.
난 그녀들 중 리더인 유미를 불렀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혹시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예. 사냥은 안전하게 다녀왔습니다. 다들 최소한 몬스터 한 마리씩은 잡았구요.
오는 길에 헌터 길드에 들려 헌터 등록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행입니다. 고생들 많으셨어요. 그런데 얼굴들은 왜 그리 안 좋은 건가요?”
“성장율이…”
유미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에 물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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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가 그녀들을 구해 준었던 날 이후로 이렇게 심각한 표정은 본 적 없다.
“어떻게 하나 같이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하는 엔트리파워볼 걸까요?”
난 비로소 그녀들이 지금 실망감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정도면 그다지 실망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미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 1.5예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형우씨는 2.4고 지혜씨는 2.8이나 되는데, 겨우 1.5라네요.”
그녀가 왜 그 두 사람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실망하는 것 자채는 이해가 간다.
1.5라면 헌터로서 가장 하급인 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쓸만한 헌터가 되기는 틀렸다는 의미이다.
“마법에도 재능이 없고, 헌터로서의 재능도 없는 거지요.
무슨 몸뚱이가 이렇게 쓸모 없을 까요?”
“사람의 가치가 반드시 마법이나 헌터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1.5라고 해도 계속 사냥을 하다보면 어지간한 남자들 보다는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아뇨. 그렇게 어지간한 정도로는 안돼요. 우리는 맹세했어요.
다시는 남자들에게 그런 꼴을 당하지 않겠다고요.”
남자들에 대한 강한 적의가 이 여자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
“자작님. 저희들 강해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잠시 뒤 그녀는 두 주먹을 꽉 쥐더니 고개를 들고 내게 부탁을 했다.
“도와달라고 하셔도, 제가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곳은 지구와 다른 곳이잖아요? 무슨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마법이든 뭐든?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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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저희가 강해질 방법을 알려 주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같이 방법을 찾아 봅시다.”
내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대답을 해 주니 EOS파워볼 그녀는 비로소 얼굴을 풀었다.
“오늘은 우선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유미가 다시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를 하고 들어간 뒤, 난 아그니스와 함께 후작궁으로 돌아갔다.
“어째서 저 여자들이 그렇게 강해지는 거에 집착을 하는 건지 혹시 알고 있어요?”
나보다는 공녀가 그녀들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이 낫다.
“자작님 때문이죠.”
“저 때문이라고요?”
“네. 전부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자작님이 그녀들의 그런 열망의 원인 중 하나 인 것은 틀림 없어요. 나머지 한 가지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테죠?”
“흠. 우선 그녀들이 남자들에 대해 매우 격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겠습니다.”
“맞아요. 그녀들은 남자들이 자신들을 언제 또 그런 비참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어요.
비록 자작님께서 그녀들에게 스스로의 손으로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고 해도, 그 상처가 완전하게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간 공녀는 그녀들에게 꽤 깊은 이야기를 들은 듯 하다.
그날 있었던 일들은 누군가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녀는 그녀들을 꽤 잘 다룬 듯 했다.
“그래도 그녀들이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정도로 심각하게 남아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군요.”
“그거야 그녀들이 자작님 앞에선 최대한 밝게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렇지요.”
“예?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요?”
“하아…
자작님은 그녀들이 자작님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모르시는 군요.”
“적어도 악감정은 아니겠지요.”

“그것보다는 훨씬 더 커요. 그 끔찍한 곳에서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가질 것 같아요?”
“고마움의 감정이겠지요.”
“그 이상이에요. 그녀들, 정확하게 말하면 유미씨는 당신에게 완전하게 신봉하고 있어요.
그녀는 자작님이 자신을 구해준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원수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무엇보다 로투스바카라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건 글자 그대로 구원이었어요.
지금의 그녀에게 당신은 마치 종교 같은 거지요.”
다행이 내게 갖고 있는 감정이 애정과는 다른 것 같았다.
“흠. 알겠습니다. 나머지 여인들도 비슷하단 말이군요.”
“그건 좀 더 복잡해요. 그녀들은 당신에 대해서 굉장한 고마움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유미씨에 대해 정신적으로 종속되어 있어요.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들은 유미씨의 말이라면 무어라도 따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날 그녀들이 벌인 피의 축제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유미에게 재능이 있다던 랑그스이르의 말도.
그 재능이란 것이 헌터나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녀들에게 힘을 가지도록 도와주실 건가요?”
“글쎄요. 딱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분야인지는 모르겠군요.”
“자작님이라고 전부 다 아시는 것은 아니셨군요?”
아그니스는 드디어 자신이 조언해 줄 수 있는 것이 나왔다는 듯 씨익 웃고 있었다.
“이곳 아크네시아에는 정말 별의별 수단이 있답니다.
충분한 비용과 시간이 있으면, 평범한 사람을 초인으로, 아니 괴물로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있지요.”
나도 물론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아크네시아는 지구처럼 대부분의 인간들이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마법사와 헌터라는 존재들은 일반적인 인간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지닌다.
그리고 마법사와 헌터들은 각기 나름의 성장 방법을 통해 스스로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마법사들은 수련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클래스를 높이고 마력의 양을 늘려 성장하고, 헌터들은 몬스터를 사냥함으로서 경험치를 얻어 성장한다.
문제는 마법사도 헌터들도 타고난 재능에 따라,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마법사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헌터들도 상위의 헌터가 되려면 성장률이 높아야 한다.
아크네시아에서는 몬스터를 사냥하면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그렇게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레벨업이라고 하는데, 한 번의 레벨업으로 육체가 얼마나 성장하게 되는지를 성장률이라 부른다.
일반인의 성장률이 1.5에서 3 사이 이다.
성장률이 3 이상인 사람들은 지니어스라고 부른다.
이렇게 성장률이 3 이상인 사람이어야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해서 고위의 헌터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달리 지니어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의 헌터 중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들이다.
호기심이 많은 마법사들은 아무런 재능 없는 사람들을 이런 지니어스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강한 존재로 만들 수는 없는지 고민해왔다.

다양한 시험을 통해 마법사들은 마침내 인간을 어느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희생이 따랐겠지만, 그런 희생 따위 마법사들에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마법이지요. 물론.”
그녀는 내게 마법으로 인간을 어떻게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지 설명해 주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난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그녀의 말을 열심히 경청했다.
“위험하지는 않습니까?”
“세상에 아무런 위험도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나요?
하지만 뭐 충분한 돈을 들이면 위험을 줄일 수는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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