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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화 내 상대는 누구요?
무견은 잠시 머릿속이 멍해져 할 말을 잃었다.
이에 무승남이 말을 이어갔다.
“선각자의 실종은 아마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라면 오유겁에 대해 예견하고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의 누구에게서 들은 것이냐?” “엽현의 곁에 있는 도칙에게서 들었습니다. 그 도칙은 예전 선각자에 속해 있던 존재이기도 합니다.” “선각자의 도칙… 그렇다면 거짓은 아니겠군.”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때문에 무국은 이번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저 혼자라면 상관없을지도 모르겠군요.” “너 혼자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그들의 다툼에 개입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는 무국의 대표가 아닌, 제 개인적인 일탈로 처리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불의의 사고가 생겨도 무국에는 피해가 가지 않을 테니까요.” “흠… 어느 편에 서겠느냐?” “엽현입니다.” 엽현!
“이유는? 그놈이 강해서?”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럼?”
“음… 그 자에겐 괴물 같은 배후가 득실득실하기 때문입니다.” “…….”
무승남이 무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정말로 왕위를 찬탈하고자 했다면 이미 조부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저를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무국에서 나고 자란 무국인입니다. 만약 제가 엽현을 도와 승리한다면 그 영광은 무국에게 돌아갈 것이고, 설령 패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조국에 누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무승남은 두 사람에게 공손히 예를 차린 후 자리를 떠나려 했다.

바로 이때, 무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석 하나가 무승남 앞으로 날아갔다.
“지니고 있거라. 위급한 일이 생기면 내가 바로 달려가마.”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를 마지막으로 무승남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무진은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만약 사내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대답하는 무진의 안색이 매우 복잡하다. 만약 무승남이 남자였더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완벽한 무국의 후계자가 되었을 것을, 그러지 못한 현실이 애석한 것이다.
이때 무견이 무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저 아이의 성별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이 무국의 운명은 승남의 손에 맡겨질 테니 말이다.” 무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 나는 숨어서 몰래 저 아이를 지켜보도록 하마. 차기 무국 국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될 테니 말이다.” 말을 마친 무견이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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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족과의 대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이 날.
엽현이 있는 방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문종의 파워볼게임 강자들은 죄다 엽현의 방문 밖에 모여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오면 곧장 서영족을 멸하러 출발하리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엽현의 방문.
“과연 사조가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류웅의 질문에 심성하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일단 믿어 보자꾸나.” “사조께서 혹시 천지부 제작방법을 알려 주실 거라 보십니까?” 심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게 필사본을 만들게 하셨다.” “과연… 이런 것조차 우리와 공유하려 하시다니……. 그분이 우리의 사조가 되신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심성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역시 엽현에게서 천지부에 대한 고서를 전해 받았을 때 지금의 류웅과 같은 반응이었다.
신분과 상관없이 엔트리파워볼 자신의 사람에게 무조건으로 베푸는 사람.
지금과 같은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는 흡사 선각자가 만유서원에게 대한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닌가.
류웅이 흐뭇한 얼굴로 엽현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근래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사조가 우리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류웅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EOS파워볼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태양이 산봉우리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엽령, 여부자, 잔녀, 그리고 장문수가 엽현을 찾아왔다.

“오빠는 아직인가?” “아직 나오지 않으셨소.” 심성하의 말에 엽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 있는 거 아냐? 들어가서 부를까?” 장문수가 문을 열려는 시늉을 하자, 심성하가 황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절대 그래선 안 되오! 사조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오늘 서영족을 치겠다고 만천하에 떠들었는데, 이러다가 가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 거 아냐!” 심성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때 여부자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먼저 가 있는 게 어떻겠소?” “음? 놈을 버리고 가자고?” “먼저 출발하면 뒤따라 오겠지.” 장문수가 잠시 고민하다가 엽령과 잔녀를 바라보았다.
“그대들 생각은?” “우리 넷만 가도 충분하다.” 장문수에게 대답한 엽령이 심성하를 향해 말했다.
“그대들은 오빠를 기다렸다가 함께 오도록 하시오.” 이 대화를 끝으로 네 여인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목표는 서영족!
서영족.
이날, 전 오유계의 무인들이 서영족을 주목했다.
특히 서영족으로 향하고 있는 네 명의 여인.
잔녀, 수라여제, 여부자, 그리고 장문수……. 이 진용을 과연 서영족은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서영족 역시 오유계 역대 최강의 강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선각자가 제때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오유계는 이미 서영족의 발밑에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 시각 영계 변경에 네 여인이 진입했다.
이때의 영계는 매우 고요한 것이 마치 서영족 전체가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공중, 조용히 아래쪽을 살피던 여부자가 재밌는 생각이 났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 서영족이 과연 어떤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을지 궁금하구려?” 오유계의 주인, 잔녀가 서영족이 있는 방향을 살펴보며 대꾸했다.
“보아하니, 이미 대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소. 이번 전쟁은 쉽지만은 않겠소.” 여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소. 당시 선생은 서영족 족장만을 해치웠을 뿐, 나머지 무인들은 건들지 않았소. 다시 말해 그들의 전력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오. 만약 그때의 강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이 전투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오.” 이때 장문수가 나섰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저들은 왜 그렇게 서옥에 집착하는 걸까? 삼대 금역의 강자들조차 서옥을 원하기는 하되 함부로 출수하지 못하는데, 서영족은 계옥탑이 출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빨을 드러냈어. 설령 우리를 죽이고 서옥을 차지한다 해도 삼대 금역의 강자들을 맞서야 할 텐데, 왜 이리 서둘렀던 거지” 장문수가 대답을 구하듯 여부자를 바라보았다.
“흠… 나 역시 최근 같은 의문이 들긴 했다.” “그대 역시 서옥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는 건가?” 엽령이 질문하자 여부자가 고개를 저었다.
“만유서옥은 선생의 개인적인 공간이오. 비록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신 적은 없지만, 그분을 존중하는 의미로 아무도 들어가 보지 않았소. 아…….” “왜 그러시오?” “어쩌면 그녀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녀?”

장문수가 엽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탑의 도칙들 중 다른 도칙들을 통제하는 큰언니라 불리는 존재가 있소. 그녀는 항상 선생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으니, 그녀라면 서옥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오.” “그녀는 지금 어디 있소?” “그건 나도 모르오. 어쨌거나… 오늘 우리의 상대는 당대 최강의 세력이었던 서영족이오. 결코 방심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오.”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네 여인의 앞에 원천이 나타났다.
여인들을 둘러보던 원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먼저 말을 걸었다.
“엽현은 어디 있나?” “후후… 글쎄다.” 여부자의 아리송한 대답에 원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존재는 눈앞의 여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엽현이었다.
그의 예측 불가능한 판단에 속거나 당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특히 엽현의 무서운 점은 서영족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9호를 움직일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만약 9호가 지금 깨어난 상태라면…….
생각만으로 온몸이 오싹해지는 원천이었다.
이때 가만히 있던 엽령이 소리쳤다.
“여기까지 와서 말싸움할 필요가 있을까?” 말과 동시에 엽령이 몸을 날렸다. 그녀가 막 원천을 향해 일장을 날리려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한 줄기 도광이 날아들었다.
슉-!
쾅-!
큰 충격과 함께 엽령이 원래 있던 자리까지 밀려났다. 이때 모두의 시선에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모백, 오유계 육대강자 중 일인!
오른손에 한 자루 도를 들고서 엽령을 응시하고 있는 이모백.
“여제, 걱정 마시오. 이들을 위해 출수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오.” 엽령은 그 어떤 쓸데없는 말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이모백을 향해 수라척을 찔러 넣었을 뿐이다.
멸천의 기운을 담은 수라척은 공간을 부수며 빠르게 날아갔다.
엽령은 당시 엽현을 도우러 가던 자신을 막아선 이모백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찾아가 죽이려 벼르고 있던 것이다.
오늘은 다를 것이다!
한편, 이때 원천은 언짢은 표정으로 잔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유지주(五維之主), 우리 서영족은 그대와 아무 원한이 없는 걸로 아는데?” 잔녀가 원천을 향해 대답했다.
“원한은 없지만, 너희들의 야심이 걱정되는구나.” “…….”
“내 상대는 어디 있지?” “삼숙(三叔)!” 원천이 어딘가를 향해 소리친 순간,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잔녀 앞에 나타났다.
이 노인은 서영족 최강의 강자 중 하나인 원무변(元無邊)이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잔녀였다.
“어디 실력 좀 볼까!” 잔녀와 원무변이 순간 제자리에서 사라지고, 잠시 후, 먼 성공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장문수가 자신의 차례라는 듯 씩 웃으며 원천에게 다가섰다.
“네가 내 상대라는 농담은 하지 마. 순식간에 목을 따버릴 테니까.” 원천 역시 강한 축에 들었지만, 장문수의 눈에는 그저 약해빠진 무인에 불과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원천은 굳이 화내며 따지려 들지는 않았다.
곁에 있던 여부자는 과연 서영족이 장문수를 상대로 누구를 내보낼지 자못 궁금했다.
바로 이때, 장문수의 뒤편에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날아들었다.
“후세의 무인들은 다 너같이 광오한 것이냐?” 순간 장문수가 뒤돌아봄과 동시에 그녀의 창이 뇌광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가히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엄청난 속도였다.
퍽-!
장문수의 정면 백 장 밖, 둔탁한 소리와 함께 포악하게 날아가던 그녀의 창이 공중에 멈춰 섰다.
창을 막아선 것은 흑의 장포를 입은 중년남자.
몸을 꼿꼿이 세운 채 가볍게 미소를 띠고 있는 남자의 눈빛에선 세상을 업신여기는 패도함을 엿볼 수 있었다.
“무적종?” 장문수가 중년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묻자 중년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적종, 전좌(戰左)라 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수십만 년 묵은 늙은 뼈다귀의 실력이나 한번 보자꾸나!” 쉭-!
장문수의 창이 공간에 커다란 구멍을 내며 빠르게 날아갔다. 그녀의 창끝이 막 전좌의 미간에 닿으려는 순간, 전좌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삼중차원!
바로 이때, 장문수가 포악한 괴성을 지르며 창을 종으로 쳐올렸다.
“쥐새끼 같은 놈. 튀어나와!” 쾅-!
창이 쓸고 간 공간이 날카롭게 찢어진 순간, 쾅-!
공간이 무너지며 검은 그림자 하나가 수백 장 뒤로 밀려났다.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전좌였다.
장문수를 바라보며 가볍게 흔들리는 전좌의 눈동자. 그의 표정에선 조금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중함이 묻어났다.
이때 장문수가 창을 쥔 채 활처럼 달려들었다. 순간 그녀의 창 끝에 한 줄기 뇌광이 맺혔다.
“후후, 늙어서 그런지 맥아리가 없구나!” 모멸감에 얼굴이 붉게 물든 전좌.
순간, 그의 오른팔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쾅-!
전좌 주변의 공간이 일순간 희미해짐과 동시에 강대한 기운이 사방에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문수,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조심해!] 여부자의 음성이 들려오자, 장문수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호들갑 떨긴!” 외침과 함께 머리 위에서부터 반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장문수의 창!
쉭-!
이 순간, 전좌가 고함을 지르며 마치 한 알의 포환처럼 신형을 날렸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