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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마스트리흐트의 유일한 왕비는 아니겠지만 말이에요.”
마스트리흐트 국왕의 하렘은 이미 세 명의 왕비와 아흔 여덟 명의 비빈들로 가득하다.
평범한 지구 여자라면 백 명이 넘는 부인 중 한 명이라는 말에 당장 욕설부터 날라왔을 지도 모른다.
“마스트리흐트는 어떤 나라인가요?”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그렇지 않았다. 먼 남부의 그리 크지 않은 나라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그녀의 성정은 내가 알던 대로였다.
우리가 알던 알렉산드라 이바노는 강인한 여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예에서 왕비의 자리를 차지하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그리 커다랗게 남겨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잘 것 없는 노예에 불과하던 알렉산드라가 처음 부터 왕비로 낙점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아무리 대범한 국왕이라해도 노예를 당장 왕비로 만들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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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는 노예의 신분으로 하렘에 입성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나갔다.
물론 국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다른 여인들에 비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을 거라는 예측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그것 뿐이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국왕의 사랑 뿐이다.
그리고 국왕의 하렘은 그녀에게 적의를 가진 수많은 여인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생존을 위해 국왕의 총애는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었다.
단신의 그녀로서는 국왕의 절대적인 사랑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들로 가득한 하렘은, 실상은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온갖 음모와 암투로 가득한 곳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여인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왕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의 목을 노리는 곳이다.
여자들은 국왕을 볼 때마다 알렉산드라를 모함했고, 국왕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녀의 목숨을 노렸다.
어떤 의미에서 하렘은 또다른 정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그녀가 겪었을 전쟁은 노예였던 내 지난 삶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위태로운 줄타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살아남았고, 그녀에게 적의를 보였던 여자들을 모두 하렘에서 쫓겨나거나 혹은 더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다.
“마스트리흐트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강대국은 아니지만 부유하고 주변 나라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지요.”
“평화롭게요?”
“예. 마스트리흐트는 플란데런의 중심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플란데런의 경제 중심지라고 할 수 있지요.”
난 플란데런과 마스트리흐트에 대해 간략하게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마스트리흐트가 플란데런이란 지역의 상업을 좌우한단 말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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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그녀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한때 철혈의 왕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을 당시의 그녀가 저런 눈빛을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마스트리흐트의 왕비가 된 알렉산드라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교묘하게 조종해서 마스트리흐트의 국력을 키워나갔다.
마스트리흐트는 몇 년 사이에 단순히 플란데런의 경제 중심지가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지금 눈을 빛내고 있는 알렉산드라를 보고 있으니, 그녀가 벌써 자신에게 들어온 이 혼담에서 무었을 얻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곳 마스트리흐트의 국왕이 저를 반겨줄 지 모르겠지만요.
만약 왕비 자리가 아니라고 해도 상관 없어요.
한 번 모험을 해 볼 가치는 있을 것 같군요.”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 제안을 듣고 겨우 십 분 만에 그녀는 마스트리흐트 국왕의 하렘에 들어갈 것을 결정했다.
“그건 너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스트리흐트 국왕은 이미 알렉산드라 양에게 완전히 반해 있으니, 왕비가 되시는 것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난 그녀를 위해 준비한 시나리오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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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프요? 들어보기는 했지만, 저희 집안과 러시아의 옛 왕가와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걸요?”
처음부터 그녀를 왕비로 들여보내려면 걸맞는 혈통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같은 수준, 그러니까 왕가 혹은 대귀족의 영애 쯤 되지 않으면 마스트리흐트의 왕비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한 번 겪어왔던 시간대에서 국왕은 노예 출신의 알렉산드라를 왕비로 만들기 위해 정말로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마스트리흐트 왕비에 걸맞는 혈통을 만들어 줄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난 마스트리흐트 왕궁에 갔을 때, 알렉산드라의 성을 로마노프라고 말해놓았다.
“하지만… 그렇군요.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의 옛 왕가의 혈맥을 누가 확인할 수 있겠어요.
알겠어요. 알렉산드라 로마노프. 마음에 들어요.”
자신의 성을 바꾸는데 동의하는데에는 겨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과단성있는 그녀가 마음에 든다.
“당분간 몇 가지 수업을 듣도록 하세요.”
난 그녀가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이길 원했다.
적어도 옛 황가의 후손이라면 갖추었을 것 같은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
다행이 그녀는 모델이면서 배우이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특수전 사령부에 새로 들어온 재원들은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이제는 중령으로 진급한 특수전 사령부 사령관을 불러 면담을 나누고 있었다.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저보다 훨씬 더 지휘관으로 어울릴 사람이 두 손이 모자랄 정도로 많습니다.
걸프 지역과 아프간에서 몇 년 씩이나 실전을 쌓아온 부하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금 난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김규현은 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 자리를 고사할 생각도 한 듯 하다.
하지만 내가 자신을 믿어주니 최대한 그에 부응할 생각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도 남자였고, 야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 뿐이다.
미 해병대 출신 2,000여 명이 새롭게 뉴트론돌 방위군에 합류하면서 방위군의 전력은 급격하게 올라갔다.
좀 더 체계적인 지휘 체계, 좀 더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대륙 동부 지구 출신 헌터들의 영입도 늘어서 이제는 모두 이만 오천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수의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군대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뉴트론돌과 트론돌 사이에 만들어지고 있는 신도시는 벌써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직 이름도 지어지지 않은 이 새로운 도시는 이곳 아크네시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활기에 넘쳐나고 있다.
아직도 한창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이 도시에서는 건물이 한 채 지어질 때마다 매일같이 대륙 동부에서 밀려오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고 있는지, 새로운 이주민들을 보조할 행정 관리 부서사람들은 하루에 열여덟 시간 씩 일을 해도 모자를 정도였고, 끝이 없는 과로에 지쳐있는 그들을 위해 티어 3 짜리 리스토어 스테미나 아티팩트를 지급하고, 매일 각종 보양 음식을 만들어 강제로 복용시켜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들의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그것도 안정적인 직업을, 무엇보다 보람있는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상이었다.
사람들이 지구에서 이곳 아크네시아로 끌려오기 시작한 지, 2년에 가까워지는 지금 아크네시아 전역에 수십억에 달하는 지구인들이 끌려와 있었고, 대륙 동부에는 적어도 5,6억에 달하는 동아시아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구호단원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지구 난민들에 대한 구호 활동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나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식량을 무한하게 공급할 수는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난민들을 위해 대량의 식량을 구매하면 그만큼 곡물과 고기의 가격은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원주민들의 불만이 생긴다.
원주민들이 식량난을 겪게 되면, 당연히 화살은 지구 난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아주 끔찍한 폭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난민들을 돕겠다고 시작한 일이 오히려 지구인들의 목숨을 더 짧게 만드는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기에, 이 아크네시아의 곡물 시장에 가능한 적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지구 난민들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구호단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미성년자에 대한 배급 뿐이었다.
각 개척 도시에 서있는 구호단의 천막에서는 그저 생김새를 보고 어리다 싶으면 최소한의 식량을 배급해 주는게 전부였다.
여전히 매일 수많은 지구인들이 딸린 식솔을 부양하기 위해 도시를 나서 괴물을 잡겠다고 나섰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가능하다면 이번에는 많은 지구인들을 살리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지금 수준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결국 하루에도 수천, 혹은 만 단위의 새로운 고아들과 과부들이 새로이 생겨나고 있었다.
구호단들은 그렇게 보호자를 잃은 아이들을 모아 끝도 없이 새도시로 보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지구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 주로 기술자들을 계속해서 모집해서 가족과 함께 보내왔다.
벌써 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도시의 건설이 끝날 때 쯤이면 수백만을 넘어 천만 이상이 이 새로운 도시에 머물게 될 지도 모른다.
“준비 되셨습니까? 알렉산드로 로마노프양.”
“예. 이제 마스트리흐트의 국왕 전하를 만나러 가도 될 것 같습니다.”
한 달간 다양한 학습을 마친 알렉산드로의 모습은 꽤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남을 부려온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바로 내가 원했던 것이다.
위에 서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태도, 눈빛, 그리고 말투, 모두 완벽했다.
우리는 바로 마스트리흐트로 이동했다.
“오오. 백작이 왕녀 전하를 찾으셨다는 전갈을 받고 그동안 학수고대 하며 기다려왔습니다.”
생각대로 마스트리흐트 국왕은 맨발로 왕궁을 뛰쳐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알렉산드로 로마노프를 맞이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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