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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사람들을 따라 성벽위로 올라가보니 저 멀리 알렉산드로스가 본신을 드러내고 하늘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어쩌자고 본신을 드러낸 거지요?] 조금은 당황스러워 난 바로 알렉산드로스에게 말을 걸었다.
[설마 인간 셋을 이기지 못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건가요?] [이자식들이 이상한 짓을 하잖아.] 내 말투에 책망이 섞였다고 생각했는지, 마치 어른에게 혼이나자 변명거리를 급하게 꺼내 놓는 아이처럼 알렉산드로스는 조금은 기가 죽은 말투로 대답했다.
[이상한 짓이라니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갈 리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곧바로 알렉산드로스의 시야를 공유해보니, 그의 발 밑에 두 사내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두 사내의 몸이 꽤나 거대하다.
알렉산드로스의 본신이 거의 삼십 미터에 육박하는데, 두 남자들의 머리가 알렉산드로스의 허리 가까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십오 미터는 충분히 되는 것 같다.
[흠.. 이런 것은 처음 보는데?] [놈들의 심장에 종속된 천사의 힘을 끌어낸 거지.] 대답을 하며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오른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두 거인은 드래곤의 공격을 피해 양쪽으로 흩어져 버렸다.
[강한가보군?]
[흥! 내 본연의 힘을 쓰면 이까짓 녀석들 한 입꺼리도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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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천사도 아니고 고작 천사의 힘을 이끌어낸 것 뿐인데.] 알렉산드로스가 웃으며 오른쪽으로 피하는 거인의 몸을 잡아챘다.
[이까짓 것!]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여유가 생겼다는 듯 두 거인들을 상대로 연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한 명은 어디있지요? 벌써 처리한 건가요?] [본신으로 돌아오기 전에 한 놈은 처리했다.] 알렉산드로스가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거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십오 미터짜리 거인 셋을 상대로 싸우다가 한 명을 쓰러트린 거라면 알렉산드로스에게 드래곤의 모습을 드러냈다고 탓하기만은 어려워 보였다.
아니 오히려 칭찬해줘야 할 지도 모른다.
[대단하군요. 저런 녀석들을 상대로 벌써 한 놈을 쓰러트렸다니.] [진짜 천사였다면 몰라도, 저런 반쪽짜리를 상대로 그런 말을 들을 까닭은 없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말속에는 어딘지 뿌듯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그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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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도 연신 두 팔을 휘둘러 거인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두 거인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빨라 알렉산드로스의 힘찬 주먹질은 아쉽게도 두 사내를 스쳐 매번 애꿎은 땅만을 내리칠 뿐이다.
쾅! 쾅! 그럴 때마다 땅은 움푹 움푹 패여갔다.
그렇지 않아도 직경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구덩이가 12개나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드래곤과 거인의 싸움으로 주변으로 작은 구덩이까지 잔뜩 만들어지고 있었다.
거인들도 단순히 피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 거대한 몸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을 피한 한 놈이 공중으로 높게 뛰어올라 알렉산드로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거인들의 주먹질이 얼마나 빠른지, 난 날아오는 주먹을 하나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드래곤에 비하면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인의 주먹은 그에게 그다지 대단한 충격을 주지 못했다.
“이자식!”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로서는 맞았다는 것 만으로 충분히 치욕스러웠는지 거대한 고함을 지르고 두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끼이이~”
드래곤이 날아가자 두 거인도 등 뒤에서 날개를 뽑아내고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공중에 떠서도 천사들의 움직임이 알렉산드로스에 비해 훨씬 더 빨랐다.
마치 말벌 주위를 날아다니는 꿀벌들처럼 두 거인 천사는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알렉산드로스의 몸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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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
알렉산드로스가 다시 한 번 노한 함성을 질렀다.
이번 고함에는 마력이 섞여 있었나보다. 두 거인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졌다.
알렉산드로스의 팔이 두 천사의 몸통을 한 번씩 후려쳤다.
퍽! 퍽! 싸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격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십오 미터에 달하는 두 거인의 몸이 종이 인형처럼 가볍게 백여 미터 씩 날아가 땅에 쳐 박혔다.
쾅! 쿠왕!
알렉산드로스에 비하면 꼬마와 같지만, 인간에 비한다면 괴물의 수준을 훌쩍 넘어가는 두 거인의 몸이 땅에 부딪치는 순간의 굉음은 수 킬로미터 밖의 트론돌에게까지 들려왔다.
“우와!”
사람들의 함성이 내 귓가로 들려왔다.
평생에 없을, 어쩌면 전설로 남을 지도 모를 천사와 드래곤의 싸움을 직접 관람할 기회를 얻은 트론돌 시민들은 어느새 싸움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나보다.
“힘내세요! 천사님!”
하지만 대부분의 트론돌 시민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아닌 천사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역시 드래곤은 공포의 존재이고, 천사는 인간을 구원하러 온 존재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어쩐지 맥이 빠져 난 알렉산드로스와의 시야 공유를 풀어버렸다.
아무래도 알렉산드로스가 본신을 드러낸 이상 그가 위험에 처하거나 할 염려는 전혀 없어보였다.
[그럼 수고해요. 이따가 뭔가 알아내면 말해요.]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드래곤의 위엄을 구경하는 모습을 두고 난 트론돌 성벽을 떠났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연락이 온 것은 두어 시간 쯤 지난 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산맥 아래 만들어 놓은 우리의 실험실에 녀석들을 가둬 놓고 있었다.
“뭔가 알아낸 것은 있나요?”
“세 놈 중에 저녀석이 우두머리야.”

알렉산드로스는 두 팔과 다리가 사라지고 몸뚱이만 남아있는 한 불쌍한 사내를 가르켰다.
아까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바로 그 중년 남자였다.
“심한 꼴이 되었군요.”
“저런 꼴이 되서도 한 마디도 불지 않더군.”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몸뚱이도 그리 성해 보이지는 않는다.
알렉산드로스의 고문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또 한 녀석은 결국 죽어버렸고 말야.”
알렉산드로스는 한쪽 구석에 쓰러져있는 몸뚱이의 잔해를 가르켰다.
“마지막 한 놈은 그래도 인간다운 놈이었어.
두 선배가 어떤 꼴이 되는 지 보더니 순순히 불기 시작하더군.”
알렉산드로스의 앞에는 침을 질질흘리면서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무릎 꿇고 앉아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낮에 들판에서 보았을 때에는 굉장한 미남이었는데, 퉁퉁 부어오르고 핏자국과 퍼런 멍자국이 가득한 얼굴을 보니 그냥 불쌍한 희생자에 불과할 뿐이다.
“알아낸 것은 뭔가요?”
“아쉽게도 이녀석 사도가 된지 한 달 밖에 안되는 신참이라 아는 것은 거의 없더군.”
“사도란 말이지요?”
“어. 외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놈들을 사도라 부르나 보더군.
일반 신도 중에서 위에 인정을 받은 녀석들이 사도가 된다는군.”
“그래, 그 사도들은 무얼하고 있던 걸까요?”
“그 붉은 망령을 조절해서 트론돌을 습격하게 하려던 것이었어.”
그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겨우 그것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의 전부라면 성교회와의 일전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자들을 잡아온 보람이 없다.
“망령들은 영혼의 찌꺼기라고 하더군.
이성을 가진 생명체가 목숨을 잃으면 승천해야 하는데, 때때로 어떤 이유에선가 그런 찌거기들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는군.
특히 이번 처럼 동일한 시간에 많은 생명체가 목숨을 잃는 경우에 말이지.”
“하지만 아크네시아 어느곳엔가는 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전쟁터마다 망령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난 알렉산드로스의 앞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경우는 다른 전쟁과는 달랐지.
일순간에 십만이 넘는 병사들이 동시에 목숨을 잃었으니까.”
“흠… 동시에 대량의 목숨이란 말이죠?”
“그렇다는군.
동시에 빠져나가는 영혼들을 처리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군.
뭐 부하가 걸려서 그렇다고 하네.”
“영혼을 처리한다?”
“신의 섭리에 따라 영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말하는데, 뭐 종교인들이야 뭐든지 이해가 안 가면 신의 섭리라는 말을 쓰기 좋아하니 그런가보다 해야지.”
“그래서, 망령들은 그 시스템이 처리하지 못한 찌꺼기이다?”
“여하튼 망령들은 나타났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이들은 그 망령들에게 어떤 목적을 주입할 수 있나봐.
그리고 그 붉은 망령은 그런 망령들 중에 에너지의 밀집도가 높은 개체라, 그 망령들 집단의 리더 역할을 시키기 알맞다는 듯 해.”
“결국 그 붉은 망령에게만 지시를 내려 놓으면, 나머지 개체들도 따라서 움직인다…
그 지시가 뭐였을까요?”
“모든 인간을 말살하라.

이번 같은 경우에는 우선 트론돌이 목표였겠지.”
“트론돌을 공격하려 했던 이유는?”
“그건 모르지.”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내는 아는 것이 없어 더 이상은 말해주지 못한 듯 하다.
“고생이 많군요.”
“아주 잘 하셨군요. 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테니 빨리 죽여주시길 바랍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시나 보군요?”
“두렵지요. 비록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직도 두려움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사도가 되기에는 아직 많이 모자란 인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군요.”
팔과 다리가 잘렸음에도 그의 눈에는 조금의 공포도 후회도 엿보이지 않았다.
실로 자신의 믿음에 대해 한치의 의혹도 없는 의연한 모습을 보니 솔직히 감탄이 나온다.
“그나저나 자작님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드래곤마저 사역하고 계실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드래곤 한 마리를 부린다고 성교회와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성교회의 사도들은 모두들 천사의 힘을 지니고 있는 건가요?”
“죄송합니다만 성교회의 일은 한 마디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도님의 의지를 존중해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감사의 의미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그럼 잘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아크네시아의 모든 드래곤들이 모두 몰려와도 성교회를 무너트릴 수는 없을 겁니다.

아크네시아에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뒤 아직까지 성교회와 대립해서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작님께서 이렇게 성교회의 행사에 방해를 한 것은 결국 심히 안타까운 비극으로 끝이날 겁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셨으니, 자살을 권유해드리겠습니다.”
잠시 날 놀리는 건가 싶었지만,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듯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내의 얼굴을 보니 그런 것은 아니듯 하다.
그의 그런 표정이 연기인지 사실인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 남자는 대단한 배우이거나, 완벽하게 미친놈이다.
그 어떤 달변가도 광신도를 상대로 논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사도님의 충고는 고맙게 받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세 분 사도님들의 실종과 저와의 관계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여전히 자작님께서는 성교회를 우습게 보시는 군요.
조만간 성교회는 저 드래곤과 자작님 사이의 관계를 알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자작님을 처리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트론돌의 시민들 전부, 이 네메아의 국민들 전부, 그리고 새로 이주해오는 지구인들 전부를 처단하는 일도 서슴지 않을 겁니다.”
굉장한 협박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 그런 협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거 참 우연이로군요.
저도 제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신성 도시가 잿더미가 된다해도 두렵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작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구속하신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으로 보이는 군요.
그래 원하시는 것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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